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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11.06.10
- 수정일
- 2011.06.10
- 작성자
- 관리자
- 조회수
- 1199
2002 미스코리아 금나나라는 여성
...... 그녀의 생의 키워드는 ''노력''과 ''도전''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나는 노력을 통해 깨달았다. 100미터 달리기를 날마다 연습한다고 해서 누구나 칼 루이스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진다. 그리고 오랫동안 계속 노력하다보면, 어느덧 칼 루이스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를 거의 따라잡을 듯한 속도로 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노력의 묘미는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지금보다는 나아진다. 사실, 이보다 확실하게 용기를 주는 결과가 어디 있을까......... 한계라고 느껴지는 것들은 늘 제게 도전의식을 심어 주었지요.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결국 소망하던 바를 이룬 것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2002 미스코리아 김나나의 글이다. ''노력''에 대해 예찬하는 글은 괴테이후로 처음 대하는 것 같다. 노력의 묘미는 ''지금보다 나아진다''는데 있고, 그것은 ''용기''를 주며, 자신이 ''한계''를 느낄 때는 오히려 도전하여 소망을 이룬다는 말이다. 1983년생 28살 젊은 아가씨의 저 언변에는 노력해 본 者만이 알수 있고, 할 수 있는 생명력이 가득찬 지혜가 묻어 나온다.
내가 금나나를 눈여겨 본 이유는....
그녀가 미스코리아의 당연한 방향처럼 여겨지던 방송, 연예계의 진출이 아닌 그 어려운 ''공부의 길, 연마의 길''로 떠났던 것 때문이다.
편할 수도 있는 길을 혹은 대중의 인기를 끌 수도 있는 길을 버리고서...
알고보니 그녀가 미스코리아에 출전 한 것도 연예계 진출할려는 목적이 아니라, 그녀의 ''도전욕망'' 때문이었다고 한다.
금나나는 “도전은 현재의 나를 있게 해준 토대였다. 미스코리아 출전 역시 여성으로서의 하나의 도전이었다”며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외과 의사를 꿈꾸던 의학도였던 금나나 씨에게는 미스코리아가 단순히 자신의 미를 인정받는 목표의 자리만은 아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미스코리아 출전은 도전정신의 실천이라 하겠다.
날씬한 금나나지만 체중이 때로 풍선처럼 불어나서 고생께나 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한때 키 172cm, 허리둘레는 30인치가 넘었고, 체중은 62kg에 이르기도 했다. 운동복을 세 벌씩 겹쳐 입고 하루 두 시간씩 달리면서 치열하게 자기와의 싸움을 한 끝에 마침내 10kg 감량하고, 나중에는 미스코리아로 뽑히게 되었다는 것.
미스코리아가 된 이후 그녀는 의과공부를 계속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혹은 연예계로 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가 유학을 결심한 것은 2003년 파나마에서 열린 미스 유니버스대회 참가가 계기가 됐다.
“대회를 위해 영어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더 큰 세계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녀는 미국 서부와 동부의 대학들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래, 이왕이면 아이비리그, 그중에서도 최고라는 하버드에 도전해 보자.”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고 한다.”
미스 유니버스에 참가한 그녀는 거기서 몇 판 사진만 열심히 찌고 온 것이 아니라, ''더 큰 세계, 더 확장된 자아에로''의 도전심을 키워 온 것이다. 즉 ''더 어렵고도 머나먼 길, 불확실하고 외로운 길''을 스스로 택한 것.
그러나 하버드 대학에 가서는 역시 고생을 많이 하엿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학생은 공부로 평가받는 것이기에 최선을 다했어요".
그러나 한국에서 얼굴 어여쁘고 공부 잘한다고 소문난 금나나씨도 하버드에서 공부 못했다고 불려 갔단다.
금씨는 신입생 배치고사를 치른 뒤 학업상담국에 불려갔는데. 한국인 유학생 중에서 ''영어(논리적 작문)''가 최저 수준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
이에 금씨는 포기하지 않고 애쓴 노력 끝에 올A를 받았을 수 있었단다.
금나나는 그녀의 세 번째 책 ''나의 네버엔딩 스토리''에서 "하버드가 준 가장 큰 선물은 ''좌절''이었다"고 적었다.
금나나는 하버드대학에서 자신이 원했던 ''의대''로 진학을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녀에게 그것은 상당한 좌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포자기 하지 않고 자신의 다른 전공에 매진했다 한다.
언젠가 그녀는,
연예계에 진출할 의향을 묻는 기자들에게 “연예계에 진출할 생각이 없다. 공부를 끝낸 뒤 세계보건기구(WHO)같은 국제기구에서 일할 계획이다고 하였단다.
더 넓은 세계에서 자신을 더욱 키우기 위하여 외로운 길을 떠났던 어여쁜 아가씨,
''좌절도 고마웠다''고 말하는 당찬 아가씨,
더 향상된 자신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고 ''도전''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아름답다.
그 생동하는 모습이야말로 생명력이고 젊음이고 美이다.
"나는 노력을 통해 깨달았다. 100미터 달리기를 날마다 연습한다고 해서 누구나 칼 루이스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진다. 그리고 오랫동안 계속 노력하다보면, 어느덧 칼 루이스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를 거의 따라잡을 듯한 속도로 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노력의 묘미는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지금보다는 나아진다. 사실, 이보다 확실하게 용기를 주는 결과가 어디 있을까......... 한계라고 느껴지는 것들은 늘 제게 도전의식을 심어 주었지요.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결국 소망하던 바를 이룬 것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2002 미스코리아 김나나의 글이다. ''노력''에 대해 예찬하는 글은 괴테이후로 처음 대하는 것 같다. 노력의 묘미는 ''지금보다 나아진다''는데 있고, 그것은 ''용기''를 주며, 자신이 ''한계''를 느낄 때는 오히려 도전하여 소망을 이룬다는 말이다. 1983년생 28살 젊은 아가씨의 저 언변에는 노력해 본 者만이 알수 있고, 할 수 있는 생명력이 가득찬 지혜가 묻어 나온다.
내가 금나나를 눈여겨 본 이유는....
그녀가 미스코리아의 당연한 방향처럼 여겨지던 방송, 연예계의 진출이 아닌 그 어려운 ''공부의 길, 연마의 길''로 떠났던 것 때문이다.
편할 수도 있는 길을 혹은 대중의 인기를 끌 수도 있는 길을 버리고서...
알고보니 그녀가 미스코리아에 출전 한 것도 연예계 진출할려는 목적이 아니라, 그녀의 ''도전욕망'' 때문이었다고 한다.
금나나는 “도전은 현재의 나를 있게 해준 토대였다. 미스코리아 출전 역시 여성으로서의 하나의 도전이었다”며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외과 의사를 꿈꾸던 의학도였던 금나나 씨에게는 미스코리아가 단순히 자신의 미를 인정받는 목표의 자리만은 아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미스코리아 출전은 도전정신의 실천이라 하겠다.
날씬한 금나나지만 체중이 때로 풍선처럼 불어나서 고생께나 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한때 키 172cm, 허리둘레는 30인치가 넘었고, 체중은 62kg에 이르기도 했다. 운동복을 세 벌씩 겹쳐 입고 하루 두 시간씩 달리면서 치열하게 자기와의 싸움을 한 끝에 마침내 10kg 감량하고, 나중에는 미스코리아로 뽑히게 되었다는 것.
미스코리아가 된 이후 그녀는 의과공부를 계속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혹은 연예계로 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가 유학을 결심한 것은 2003년 파나마에서 열린 미스 유니버스대회 참가가 계기가 됐다.
“대회를 위해 영어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더 큰 세계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녀는 미국 서부와 동부의 대학들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래, 이왕이면 아이비리그, 그중에서도 최고라는 하버드에 도전해 보자.”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고 한다.”
미스 유니버스에 참가한 그녀는 거기서 몇 판 사진만 열심히 찌고 온 것이 아니라, ''더 큰 세계, 더 확장된 자아에로''의 도전심을 키워 온 것이다. 즉 ''더 어렵고도 머나먼 길, 불확실하고 외로운 길''을 스스로 택한 것.
그러나 하버드 대학에 가서는 역시 고생을 많이 하엿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학생은 공부로 평가받는 것이기에 최선을 다했어요".
그러나 한국에서 얼굴 어여쁘고 공부 잘한다고 소문난 금나나씨도 하버드에서 공부 못했다고 불려 갔단다.
금씨는 신입생 배치고사를 치른 뒤 학업상담국에 불려갔는데. 한국인 유학생 중에서 ''영어(논리적 작문)''가 최저 수준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
이에 금씨는 포기하지 않고 애쓴 노력 끝에 올A를 받았을 수 있었단다.
금나나는 그녀의 세 번째 책 ''나의 네버엔딩 스토리''에서 "하버드가 준 가장 큰 선물은 ''좌절''이었다"고 적었다.
금나나는 하버드대학에서 자신이 원했던 ''의대''로 진학을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녀에게 그것은 상당한 좌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포자기 하지 않고 자신의 다른 전공에 매진했다 한다.
언젠가 그녀는,
연예계에 진출할 의향을 묻는 기자들에게 “연예계에 진출할 생각이 없다. 공부를 끝낸 뒤 세계보건기구(WHO)같은 국제기구에서 일할 계획이다고 하였단다.
더 넓은 세계에서 자신을 더욱 키우기 위하여 외로운 길을 떠났던 어여쁜 아가씨,
''좌절도 고마웠다''고 말하는 당찬 아가씨,
더 향상된 자신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고 ''도전''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아름답다.
그 생동하는 모습이야말로 생명력이고 젊음이고 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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